실험: IT전문 번역가 삶

August 26th, 2008

번역 맡은 게 있어서, 몇 주전에 여름 휴가지만 휴가를 개인적으로 반납한 채, 번역 작업에 5일 정도 매진했습니다. 우연찮게 전업 번역가의 삶을 주 5일 정도 체험한 셈이죠. 제가 틈틈이 번역한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제게 번역하면 돈 많이 버냐고 농담삼아 물어보십니다. 예전 포스트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제가 경험한 IT 서적 번역은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 못합니다.

아무튼 5일 동안 번역 작업에 매진하면서, 리플레시하는 의미로, 상반기 최고 베스트셀러인 시크릿 번역가인 김우열씨가 지은,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예비번역가를 위해, 번역가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활면, 소득면, 비전 측면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예비 번역가도 읽어보면 좋고, 저처럼 번역 몇 번 해본 사람도 읽어도 얻는 게 있는 책인 듯합니다.

사실, 번역 수입을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IT서적의 수입은 쉽게 알려줄 수 있었지만,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소설, 경제, 사회 서적의 번역수입은 알려드리지 못했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김우열씨의 책을 통해서 대충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영어 원서 200쪽 내외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고지 1,000매 내외가 나옵니다. 번역 단가는 실력과 경력과 지명도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영어를 기준으로 2,500원에서 6,000원 사이입니다. 이것은 200자 원고지 1장 가격입니다. 원고지 100매 나오는 책을 번역해서 넘겼는데, 처음에 계약한 번역 단가가 2,500원이라면 250만원을 받게 될 테고 단가가 6,000원이라면 600만원을 받겠지요.

번역가의 실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IT이외 분야에서 200쪽짜리 원서를 번역한다면 대략 250만원에서 600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데이터는 아니지만, 저쪽 동네 번역가들은 그 정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IT쪽은 어떨까요? IT전문지식이 풍부하시겠만 번역 경험이 없는 분들은 IT서적을 번역하실 때, 제가 들은 바로는 원서 1장 기준으로 7천원에서 만원 사이를 받는 걸로 압니다. 즉, 200쪽 기준으로 대략 14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를 왔다갔다 하겠네요.

김우열씨가 제시한 데이터와 제가 들은 데이터만을 두고 보면, IT동네의 번역료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생각이 들지만, 1쇄 팔기도 부자가 천국에 가기만큼 어려운 IT동네에서 이런 번역료도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IT서적을 번역하시는 분들이 돈만 보고 하시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제가 아는 분이나 제 경우도, 좋은 원서고 묘한 재미도 있으니까 노동량보다는 적은 돈이지만 번역이라는 미로(?)에 빠지는 듯합니다.

소명의식 약간으로 번역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 IT전문 번역가는 전문직업으로써 매력이 없는 직업일까요? 우물 속에 갇혀서 세상을 보면, 우물 위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고. 셀리그만의 실험실에 갇힌 견공처럼,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자물쇠가 풀린 감옥도 철옹성입니다.

직업이라는 건, 밥벌이를 무시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불태울 동인을 줘야 합니다. 누군가는 열정이라고 표현하고, 혹자는 내적 동기라고 부르기고 하는데. 아무튼 이런 불덩어리 하나씩을 가슴 속에 지피게 하는 게 바로 직업이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돈  때문이 아니라, 번역이라면 미칠 정도로 빠져 들고 싶은 분들이라면, IT번역 시장도 노력하시는만큼은 보상받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IT 전문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제 글을 읽고 얼마 벌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해법을 다음 번 포스트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 조금 오버했습니다. :)

위험 부담이 높은 프로젝트

August 20th, 2008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별명이 ‘쫌해봐’라는 부장님이 계셨습니다. 이 부장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키면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항변하는 부하직원들에게

뭐, 어렵다고 그래. 쉽잖아. 좀 해봐!

라고 항상 말씀하셨기 때문에, 부하직원들은 부장님의 말버릇을 줄여서 ‘쫌해봐’라고 불렀습니다. 부하직원들은, 일이라는 게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는데… 이 부장님이 ‘쫌해보면’ 모든 일이 다 된다고 생각하는것 아니냐는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가끔 프로젝트는 러시안 룰렛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가려 가면서 하지 못하지만, 정말로 저 프로젝트만은 맡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들게 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내가 몸 담은 조직에 떨어지면, PM은 서로 눈치만 봅니다. 즉, 부장님이 제발 나를 지목하면서

OO씨가 이번 프로젝트 좀 맡아주면 좋겠는데.

라고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하하. 누군나 방아쇠를 당기겠지만, 제발 총알의 주인이 내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인지상정인 셈이죠.

사실, 이런 프로젝트의 특징은 위험이 높거나 많다는 데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이거나, 고객이 변덕스럽고 야근을 좋아하거나, 영업이 먹튀성으로 계약을 한 프로젝트거나… 등등 나열하기에 타이핑하는 손이 아플 정도로 다양한 위험이 존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물론 위험이 많다는 것의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기회도 많다는 뜻입니다. 즉,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라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성공시키면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야누스 같은 프로젝트이지만,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보는 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쫌해봐’ 부장님처럼 조직을 이끌고 실적을 내야 하는 자리라면, 위험보다는 기회를 볼 것이며. 재수없게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든 PM이라면 금맥보다는 막장에 갇힐 위험을 봅니다.

그러나, ‘된다고 믿는 사람’과 ‘안 된다고 부정하는 사람’이 싸우면, 항상 긍정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이깁니다. 실천은 차치하더라도, 말싸움에서 ‘긍정적인 마음 가짐으로 쫌 해봐!’라는 말이면,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일을 대하는 자세도 좋지만, 어쨌든 결과를 내야 하는 PM입장에서 그까짓 것 ‘쫌 해 보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은 위험이라는 불이 붙은 프로젝트에 기름을 붙는 행위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위험 부담이 높은 프로젝트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쫌해봐’의 마인드로 무장한 상사가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은 농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야 하겠지만, 프로젝트를 적어도 성공쪽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예상되는 위험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나열을 하고, 각 위험에 대해서 상사와 팀원들과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시작 전, 위험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가득이나 실패할 프로젝트를 시작과 동시에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기 때문입니다.

통아저씨, 나오세요.

퇴고, 조그마한 차이

August 14th, 2008

작은 크기의 모형은 홍보용으로도 사용했다.

무난한 문장이지만, 조금 더 고쳐보면

크기가 작은 모형은 홍보용으로도 사용했다.

이렇게 고칠 수도 있겠죠. 고치기 전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뒷문장을 좋아하는 분도 있겠죠. 저는 고친 문장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고치고 나니까, 이렇게 고치는 방법도 생각이 납니다…

조그마한 모형은 홍보용으로도 사용했다.

어쨌든 고민한 만큼 문장은 좋아지는데, ‘비용대비 효과’와 ‘자기만족’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겠죠.

로망

August 14th, 2008

프로그래밍은 로망이다!

제 블로그의 주제(?)죠. 요즘에는 프로그래밍 이야기보다 번역, 프로젝트 관리, 가끔 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프로그래밍은 일종의 로망’이기에 언제나 제 머릿속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가끔 프로그래밍을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도구 몇 가지를 개발했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 몇 가지를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는 곁가지일 뿐, 제가 맡은 업무는 프로젝트 관리입니다. 다만 팀원들이 전속력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움 줄 때 개발을 하죠.

프로젝트 관리는 참 재미있습니다. 재미 없게 보이신다고요? PM, 일단 한 번 해보시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PM이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팀원일 때는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팀 수준에서 적용하고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시적인 수준이지만, 프로젝트 전체적인 관점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작은 실천이 팀원과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희열. 뭐, 이런 이유로 PM은 참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프로그래밍은 저의 로망입니다. 이런 로망을 정리하는 의미로(?)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죠. 책을 내면서 자신감을 얻은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도전거리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일입니다. 용감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제 로망인데요.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론에 대한 책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프로그래밍 언어론은, 대개 교재나 수험서였습니다. 그냥 읽기에는 조금 따분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이콘에서 ‘새로 보는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아쉬움도 남습니다. 반가움은 관심 분야의 책이 나오기 때문이고, 아쉬움은 제가 쓰고 싶었던 분야의 책이 나오기 때문이죠. 흐미.

소개자료를 읽어보니, 제가 고민하는 컨셉과는 약간 다릅니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네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책 값이 만만치 않고, 주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면도 있지만#, ‘얼마나 책이 움직여 주느냐’고, 다른 하나는 독자들이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입니다. 아무래도 두 가지 점이 제 로망이 실현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 짓겠죠.

덧  : 제가 공역한 레일스와 함께하는 애자일 웹 개발도 1,004페이지인데, 에이콘에서 나오는 책도 1,004페이지네요. 우연도… 참 재미있습니다.

# 이 점을 만회하기 위해 부제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